‘한목소리’ 잃은 대북 정책… 정부 협상력 약화 우려된다

조영재 기자 / 기사승인 : 2026-08-07 09: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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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이상(理想) 있어야 현실 바꿔”…조현 ‘이상주의’ 발언 간접 비판…통일·외교 수장 충돌 논란 일자 “정책 협조·조율” 양측 진화 나서…美 눈치에 대북정책 흔들리는 李…조현·정동영도 잇단 충돌

 

[부자동네타임즈=조영재 기자] 8월5일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드러난 통일부·외교부의 대북정책 이견(異見)이 정부의 대북 협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일부 구상이 정부 차원의 조율된 전략이 아닌 개별 부처 차원의 구상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줄 경우 북한이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신뢰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북한이 정부 제안이 이행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 대화에 나설 유인도 약해질 수 있단 얘기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6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서로 잘 협조해야 정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뼈 있는 말도 던지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상(理想)이 있어야 현실을 바꾼다”고 한 것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전날 통일부 업무보고 내용을 “이상주의에 근거한 희망”이라고 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과 조현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그러나 조 장관이 이상적이라고 비판한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한 4대 대화(남북·미·중) 동력 확보’는 통일부 단독 구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외교부도 ‘중장기적으로 한반도·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4자·6자 협력 틀 가동 추진’을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국정과제(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실질적 진전 추구)로 내세웠다.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마다 수립하고,지난 3월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된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26∼2030)에도 같은 내용이 나와 있다. 조 장관의 공개 발언은 이런 사실과 배치되고, 정부 내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한 조율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한 당일에 대북정책과 관련된 부처 두 수장이 공개적으로 충돌한 모양새가 되며 논란이 확산되자 외교부도 수습에 나섰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처해 “통일부에서 한 여러 가지 보고내용 전체에 대해 반대하거나 입장과 완전히 다르다 이런 얘기는 전혀 아니다”고 해명했다. 박두순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유관 부처들 간 긴밀한 조율하에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오고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해명에도 정부 내 엇박자 노출은 대북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강하다. 남한 내부의 갈등으로 협상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북한에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제재 완화나 군사훈련 조정, 경제협력 등 실질적인 보상 방안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외교·안보라인의 조율이 원활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반대급부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 눈치에 대북정책 흔들리는 李…조현·정동영도 잇단 충돌

 

이재명 대통령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구상에 공개 제동을 건 파장이 이틀째 이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가세하고 정 장관이 하루 뒤 맞받으면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동맹파와 자주파 간 노선 차가 또 다시 드러났단 말이 나온다.

 

발단은 8월5일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약속했던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문제를 직접 꺼내 “취임하면서 순차적·선제적으로 복원하겠다고 국민들께 말씀드렸는데 상황이 개선되지 않다 보니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이냐’,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냐’는 반격이 생겨났고 진척도 잘 안 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론적으로 플러스가 되느냐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통일부는)고민을 많이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속도조절을 시사한 것이다. 또 정 장관이 남·북·미·중 4자 대화 구상 등을 보고하자 “여기서 발표했다고 내가 승인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고, 북한을 ‘조선’으로 부르자는 방안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정 장관의 구상은 보고 당일 무색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업무보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4자 대화를 콕 집어 “이상주의적 바람”이라고 평가한 뒤 “디스카운트(낮은 의미 부여)를 좀 해달라”고 하면서다. 다른 부처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구상을 당일 공개 겨냥한 건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그러자 정 장관은 다음날인 6일 출근길에 관련 질문을 받자 “이상이 있어야 현실을 바꾸죠”라고 반박하면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이날 통일부는 ‘업무보고 관련 입장문’을 내고 조 장관 발언을 재차 되받았다. “통일부의 자세와 접근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면서다. 또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움직이고 또 움직여야 한다”고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두 부처가 거듭 이견을 노출한단 지적을 받자 “이견 노출을 우리가 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왼쪽부터), 조현 외교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8월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부처 업무보고에 참석해 있다. 청와대통신기자단

 

 

파장이 커지자 외교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엇박자가 난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다만 이견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이견이 전혀 없느냐, 그건 전혀 아니다”며 “(통일부 보고 가운데) 4자 회담과 동방경제포럼 등 몇몇 내용이 부처 간 조율을 거치지 않은 단계”라고 했다. 특히 외교부 내에선 북·미 양자대화가 진입조차 못한 상황에서 3자·4자·6자 틀을 꺼내는 건 비현실적이란 시선이 강하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제동과 두 부처의 신경전이 겹치면서, 한반도 평화공존정책의 방법과 속도에 대한 정부 내 간극이 압축적으로 공개됐단 말이 나온다. 다만 이 대통령의 무게추는 동맹파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여권 관계자는 이를 “대북 정책 보폭에서 정 장관은 3보, 이 대통령은 1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0.4보”란 말로 표현했다.

 

자주파인 정 장관이 선제적 조치로 돌파구를 만들려 한다면, 위 실장을 중심으로 한 동맹파 라인은 북한의 호응과 한·미 공조를 먼저 따지는 쪽이다. 실제 외교·통일 부처 간 의견이 엇갈릴 때 이 대통령은 대체로 한·미 동맹과 국제공조를 중시하는 쪽에 손을 들어왔다. 지난 3월 정 장관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에 반대했지만 정부는 결국 참여를 결정했다. 자주파의 숙원이던 9·19 복원을 이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 대상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무게추의 이동은 한·미 관계를 의식한 판단과 무관치 않단 해석이 나온다. 9·19 합의의 핵심인 전방 비행금지구역 복원에 미국이 연합 감시·정찰태세 약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데다, 정 장관이 북한 핵시설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시를 공개 언급한 뒤 미국이 일부 민감정보 공유를 제한한 것도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불신을 더 키워서는 안 된단 판단이 작용했단 것이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앞세워 대남 단절을 노골화하고 중·러와 밀착하는 상황도 자주파의 정책 드라이브엔 걸림돌이다.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핵추진 잠수함, 핵연료 농축·재처리 문제에서 미국의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현실 역시 동맹파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이에 따라 외교가 안팎에선 오는 15일 경축사엔 지난해의 ‘9.19 합의 선제적 복원’보다 한발 물러난 대북 메시지가 담길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자주파 일각에선 경축사에 북한을 ‘조선’으로 호칭하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 대통령이 공개 일축하며 반영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단 평가다.

 

최근 자주파 원로들의 강경한 목소리가 잦아든 점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단 말이 나온다. 외교부와 통일부가 대북정책 주도권을 놓고 충돌했던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원로들 사이에선 위성락 실장을 겨냥해 “미국 비위만 맞추면 (피스 메이커는 커녕) 페이스메이커도 못한다”(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등의 날 선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거듭 동맹파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들도 발언을 아끼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실제로 한 자주파 원로는 최근 주변에 “이 대통령 생각이 위 실장과 다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더는 훈수를 얹지 않으려 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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