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금관 미스터리…"머리에 썼나, 얼굴에 덮었나“

권태인 기자 / 기사승인 : 2026-08-05 09: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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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 '신라금관' 학술대회 열려…트럼프도 받은 금관의 실체 논란…경주서 마라톤 토론에도 결론 못내

[부자동네타임즈=권태인 기자] 신라 금관은 실제 머리에 썼던 것인가, 망자(亡者)의 얼굴 덮은 데스마스크(Death Mask)인가.

1500년 전 ‘황금의 나라’ 신라를 호령했던 최고 권력자들의 금관을 두고 연구자들의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지난 5월29일 국립경주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영원한 권위, 신라 금관’ 학술대회에서다.

 

신라왕경연구회(회장 한정호)와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윤상덕)이 공동개최한 이날 학술대회에선 신진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가 다수 발표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사진가 구본창이 촬영한 국보 '천마총 금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사·미술사·금속공예 연구자뿐 아니라 경주시민들까지 몰려들어 200석 강당이 꽉 찼고, 보조의자 수십 개로도 모자라 뒷자리에 서서 듣는 청중도 많았다. “신라 금관이 K컬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핫해졌다는 증거”라는 현장 반응이 쏟아졌다. 2025년 신라 금관 6점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이 ‘금관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키며 총 관람객 28만5401명을 불러모은 효과이다.

 

신라 금관은 신라 왕이 마립간(신라 왕호 가운데 하나로, ‘최고 지배자’를 뜻함)이라고 불렸던 시기(356~514년)에 왕실을 상징하는 황금 장신구였다. 가장 오래된 교동 금관(5세기 전반)부터 황남대총(5세기 중엽), 금관총·서봉총(5세기 후반), 금령총·천마총(6세기 전반)까지 6점이 출토됐다.

 

신라사·미술사·금속공예 연구자뿐 아니라 경주시민들까지 몰려들어 200석 강당이 꽉 찼고, 보조의자 수십 개로도 모자라 뒷자리에 서서 듣는 청중도 많았다. “신라 금관이 K컬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핫해졌다는 증거”라는 현장 반응이 쏟아졌다. 2025년 신라 금관 6점을 최초로 한자리에 모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이 ‘금관 오픈런’ 현상까지 일으키며 총 관람객 28만5401명을 불러모은 효과이다.

 

신라 금관은 신라 왕이 마립간(신라 왕호 가운데 하나로, ‘최고 지배자’를 뜻함)이라고 불렸던 시기(356~514년)에 왕실을 상징하는 황금 장신구였다. 가장 오래된 교동 금관(5세기 전반)부터 황남대총(5세기 중엽), 금관총·서봉총(5세기 후반), 금령총·천마총(6세기 전반)까지 6점이 출토됐다.

    

    천마총 금관 발굴 당시의 모습. 납작한 고깔 모양 상태로 출토됐다. /심현철 교수

 

    

                           금령총 금관 출토 당시의 모습. /심현철 교수

 

 

■“실제 썼던 관” vs. “얼굴 덮은 데스마스크”

 

가장 큰 쟁점은 금관의 용도이다. 살아 있는 왕이 실제 썼는지, 무덤에 넣는 부장품이었는지 여부다. 사극에서처럼 왕이 생전 머리에 썼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학계에선 장례용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것도 망자의 머리에 씌운 게 아니라 시신의 얼굴을 덮은 데스마스크였다는 견해가 정설이다.

 

무덤에서 발굴됐을 당시 금관이 안쪽으로 오므라져 고깔처럼 납작한 모양으로 출토됐고, 관테(머리띠) 부분이 망자의 이마 부위가 아니라 턱이나 어깨 부분까지 내려와 있었다는 게 주요 근거다.

  

2025년 방한(訪韓)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당시 인터넷에 신라 금관을 쓴 트럼프 합성 사진이 유행하면서, 일각에선 “금관은 죽은 사람 얼굴에 씌우는 데스마스크인데 트럼프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0월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하지만 심현철 계명대 교수는 이날 “금관은 데스마스크가 아니라 실제 머리에 썼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금관, 실제로 썼는가: 착장 가능성과 데스마스크 논란의 재검토’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금관 6점뿐 아니라 신라의 중앙·지방에서 출토된 금동관 102점을 포함해 살펴본 결과, 납작하게 눌려 출토된 건 모두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적석목곽묘)에서 나왔고, 다른 형태의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온전한 모습으로 출토됐다”고 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무덤의 주인공과 부장품을 넣는 목곽(나무 덧널)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로 쌓은 뒤 흙으로 덮어 거대한 봉분을 만든 무덤이다. 즉,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적 특성상 매장 이후 흙과 돌의 압력을 받아 목곽이 함몰되면서 위치가 변형됐을 뿐 의도적으로 얼굴에 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 교수는 “양산 부부총 금동관처럼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닌 다른 형태의 무덤에선 내부 함몰이 없어 형태가 왜곡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출토됐다”고 주장했다.

              

     경남 양산 부부총 금동관. 원형을 간직한 모습으로 출토됐다. /심현철 교수

 

이와 관련, 이날 종합 토론 좌장을 맡은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여러 금관이 공통적으로 고깔 모양으로 출토된 것을 모두 자연 함몰의 결과로 보는 건 무리”라며 “단순히 위에서 눌린 게 아니라 윗부분이 오므라진 형태로 삼각뿔의 고깔 모양을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이 교수는 또 “금관과 금동관을 묶어서 해석하면 안 된다”며 “금관은 특수하게 왕족들만 할 수 있는 장례 풍습을 거쳐 만든 것이고, 금동관은 지방에서 관리가 생전 쓰던 걸 그대로 머리에 씌우거나 별도 용기에 담는 등 다양한 부장 방식이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5월29일 국립경주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된 ‘영원한 권위, 신라 금관’ 학술대회. 이한상 대전대 교수를 좌장으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금관, 누구의 것인가

 

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금관은 누구의 것인가? 왕통, 위세품, 레갈리아’ 발표를 통해 금관 소유자에 대한 새로운 논점을 제시했다. 그는 “신라 금관은 그동안 최고 지배자의 권력과 위신을 드러내는 위세품으로 여겨졌지만, 성인 남성뿐 아니라 어린이(금령총)나 여성(황남대총 북분)의 것도 나왔다”며 “금관은 단순한 위세품이 아니라 왕통과 왕위계승권을 표상하는 레갈리아(왕권의 상징물)”라고 해석했다.

 

신라 금관을 만든 장인들과 금관의 세부 장식, 유기물 분석에 대한 새로운 연구 성과도 이어졌다. 김재열 국가유산진흥원 팀장은 ‘신라 금관과 장인’ 발표를 통해 금관 제작기술과 장인 집단을 분석했고, 한정호 동국대 교수는 ‘신라 금관의 보요장식 찰고(察考)’를 주제로 신라 금관에 장식된 보요장식의 구조와 특징을 세밀히 조사해 장인의 실수와 대처까지 밝혀냈다. 정인태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쪽샘 41호·44호 무덤에서 출토된 관(冠)의 유기물 분석 성과를 바탕으로 신라 장례문화와 금관의 착장 양상을 복원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신라 금관을 단순히 화려한 전시물이 아니라 정치·사회·장례 기술·문화유산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데스마스크가 정말 맞나…신라 금관의 풀리지 않는 비밀

 

삼국 금속공예 권위자 이한상 교수 “출토 당시 고깔 형태, 얼굴 덮은 듯”…심현철 교수 “매장 뒤 흙에 눌린 것…얼굴 아닌 머리에 씌워 묻은 게 맞다”…경주서 마라톤 토론에도 결론 못내

 

 

 

장장 6시간의 마라톤 토론이 펼쳐졌다. 신라 금관 미스터리를 둘러싼 열기는 더없이 뜨거웠다. 지난 7월4일 경북 경주시 동국대 WISE캠퍼스에서 제1회 신라왕경연구회 정기학술대회 후속 포럼이 열렸다. 한달여 전 ‘영원한 권위, 신라 금관’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기학술대회가 첨예한 논쟁 속에 마무리된 후 ‘끝장 토론’을 해보자며 마련한 행사였다. 특히 심현철 계명대 사학과 교수의 ‘금관, 실제로 썼는가: 착장 가능성과 데스마스크 논란’은 한층 심화된 분석으로 6명의 주제발표자는 물론 100여 명 참석자의 열띤 토론을 이끌었다.

       

경주 천마총(6세기 전반)에서 출토된 천마총 금관(국보). 1973년 출토 당시(아래 사진)엔 납작하게 찌그러진 채 위쪽이 고깔처럼 모여 있어 2000년대 들어 ‘망자의 얼굴을 가린 데스마스크’라는 학설이 부상했다. 반면 무덤 내부가 함몰하면서 빚어진 현상일 뿐 ‘애초엔 머리에 씌우는 형태’라는 반론이 맞선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금관 데스마스크(death mask)설은 신라 마립간 시기(356~514년)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된 금관(총 6점)이 실제 머리에 쓰는 게 아니라 망자의 얼굴을 덮는 용도였다는 주장이다. 삼국 금속공예 권위자인 이한상 대전대 교수가 2000년대 들어 강하게 주장하며 주류 학설이 됐다. 애초엔 금관만 대상이었다가 지난 2020년 황남동 120-2호에서 금동관 발굴 당시 “출토 상태로 볼 때 둥근 금동관을 평평하게 눌러 얼굴을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심 교수는 금관·금동관 등 신라시대 대관(帶冠) 115점(출토품 한정)을 전수 분석한 결과, 납작하게 눌려 출토된 건 금관 6점이 포함된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덧널무덤)에 한정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매장 이후 흙과 돌의 무게에 눌려 시신 주변이 함몰되는 적석목곽묘의 특성상 대관이 찌부러진 것인데, 

이를 ‘고깔 모양으로 대관의 윗부분을 모아서 묶는 일정한 매장 방식’(이한상)으로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대관과 가슴장식(흉식, 목걸이)이 지나치게 가깝게 출토되는 것도 “눕힌 자세에서 목걸이를 펼친 결과”라며 “일종의 착시”라고 했다. 석실 구조인 양산 부부총 등 다른 형태의 무덤에선 금동관과 기타 장식이 온전한 형태로 나왔다면서다.

 

 

신라 금관 데스마스크설은 금관이 생전 착장용이 아니라 장례용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기존 학설과 결합돼 대중의 호기심을 샀다. 이날 발표에서 심 교수는 실제 쓰던 금관인지 장례용인지를 떠나서 “얼굴이 아닌 머리에 씌워 묻은 건 분명하다”는 주장을 폈다.

 

신라 시대 경주 고분의 주인공이 금관 혹은 금동관을 데스마스크 형태로 얼굴에 덮은 경우(오른쪽)와 머리에 쓴 채 매장됐을 경우(왼쪽)의 상상도. /그래픽=신라문화유산연구원·경주문화유산연구소

 

나아가 데스마스크설이 추가적인 학술 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납작하게 눌린 금동관’이 출토된 황남동 120-2호 고분의 경우 애초 피장자가 170㎝의 장신 여성으로 추정됐다가 이후 치아 발굴을 통해 12~15세로 밝혀진 바 있다. 심 교수는 “금동관을 머리에 쓴 걸로 가정하면 160㎝로 자연스러운데 얼굴 가리개라고 기준선을 잡으면 신라인들 키가 10㎝씩 커진다”고 했다.

 

유물 복원과 전시 행태도 문제가 된다. 심 교수는 “데스마스크였다면 신라인들이 의례를 위해 일부러 훼손한 훼기(毁棄) 유물이란 건데 그걸 편 상태로 복원·전시·교육해서 될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앞서 5월29일 정기학술대회 당시 토론 좌장을 맡았던 이한상 교수는 이번 후속 포럼엔 불참했다. 이 교수는 ‘신라 금관은 장례용으로 제작돼 데스마스크로 씌워진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고수하면서 “무덤 구조, 장례 문화, 장신구적 속성 등 지난 100년 간의 국내외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해야 할 학술적 논의가 ‘착시’ 등의 거친 용어로 다뤄지고 있다”고 유감을 드러냈다.

 

 

이날 금관이 장례용품(한정호·김재열)이란 주장과 실사용품(김대환·심현철)이란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등 치열한 토론 현장에 객석도 놀라운 집중도를 보였다. 신라왕경연구회의 한정호 회장(동국대 교수)은 “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이 약 30만 관람객을 끄는 등 관심이 높아 이를 학술 테마와 연결하고자 마련했다”며 “다양한 후속 연구에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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